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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사

슬도 일출 출사 (사진전 준비)

(다들 그렇겠지만) 난 대체로 무표정으로 다닌다. 문제는 내 무표정이 좀... 썩 보기 좋진 않다는 것. 평상시 내 표정은 말하자면 울상도 아니고... 화나 보이는 상, 줄여서 화상 정도 되는 것 같다.

웃상인 사람들이 부러워서 웃고 다니려고 해봤는데, 글쎄, 쉽지 않음.

아무튼 나라는 화상이 지나가면 다들 뭔가 심각한 고민을 하는 줄 안다. 고민이 많아 보인다는 말을 달에 여섯번 정도는 듣는다. 정작 나는 아무 생각 없거나, 아무 생각 없는 편이 차라리 나을 생각을 대체로 하고 있는데, 예컨대 웃기는 짬뽕이라는 단어 자체가 얼마나 웃기는 짬뽕인지, 도대체 웃기는 짬뽕이 뭐일지 따위다.

그러니까 같이 길을 가다가 무슨 생각 하냐고 물었을 때 내가 아무 생각 없다고 답하면 제발 믿어주세요. 나는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거나, 아무 생각 없는 편이 차라리 나은 생각을 대체로 하고 있으니까.

 

사진을 찍을 때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찍는 사진은 전부 스냅에 가깝다. 지나가는 순간들을 그냥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담은 사진들. 느끼고 셔터를 누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선 안된다. (그냥 막 찍는다는걸 네 문장으로 거창하게 한거임)

한때는 한껏 비대해진 자아로 내 사진에 굉장한 메시지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으나, 당연히 실패했다. 사진 실력은 둘째치고, 애초에 내가 굉장한 메시지!를 생각하질 않았다. 웃기는 짬뽕을 찍으리까.

 

그런데 학교 사진전에 출품하겠다고 한 순간 조금 달라졌다. 사진전엔 주제가 있기 때문에, 주제에 부합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제약이 생기는 것이다.

다행인 점은 주제가 '빛' 혹은 '처음'이라는 것. 이게 왜 다행이냐면... 빛이란건 찍었던 사진 몇 장에 대충 의미 부여할 수 있는 주제기 때문. 그러니까 나는 평소대로 생각 없이 찍다가 아무 사진이나 골라서 냈으면 됐을텐데...

괜히 오기가 발동해 주제에 맞게 찍고 싶어졌다. 너무 대강대강인가? 싶기도 했고.

 

물론 깊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못한다)

빛과 처음이라는 단어를 듣고 일출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 주제를 빛과 시작으로 착각함. 다 찍고 알았음. 빛과 시작이면 일출이지 ㅋㅋ). 이어서 바로 주말에 차를 빌렸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 차 시간은 오전 다섯시부터 오후 일곱시로. (제 MBTI는 P로 끝납니다. P가 80%가 넘어요) (일출 다 찍고 나니 할 게 없어서 후회했다. 세시간만 빌릴걸) (하지만 훌륭한 즉흥성으로 오후 다섯시까지 차 가지고 잘 놀았습니다.)

일출 스팟에 도착한 뒤론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온통 느끼는 대로 찍었다.

 

그니까 내가 한 생각은 빛+처음=일출이 끝인건데... 왜 무슨 대단한 생각이라도 한 것처럼 썼냐고요? 평소엔 그런 생각조차도 하지 않으니까, '그런 차이가 있었구나~' 하면서 봐주시길 바람. (여기까지 쓰고 윗윗 문단의 '조금'을 기울임처리했음)

 

이제 찍은 사진 보여드림. (이제야!)

느끼는 대로 찍는다는게 갖는 나름의 고충은, 왜 그렇게 느꼈는지 (사진으로) 설명해야 하는 점이다. 말하자면 왜 저 풍경이 예뻤는지 여러분들을 설득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위 사진을 찍을 땐 마침 배가 지나가서 더 예뻤다. 설득되나요? 배가 지나가서 예쁘냔 말입니다. 그랬으면 성공이고요.

 

그러다 그 앞의 윤슬이 더 예뻐 보일 땐 윤슬을 찍는다. 느낀대로.

빛이 예쁘네... 하는 생각이 들었나요? 그럼 성공입니다. (물론 여러분들도 느끼는대로 느끼면 됩니다. 그냥 '내 의도를 알아줘~'하고 있는거)

제발 크게 봐주세요

이 땐 색이 빠질 수 없는 광경이었다. 햇빛 색이 예쁘네~ 하는 생각이 들었나요? 그렇다면 성공입니다.

 

암튼 이런 식으로 찍었다. 풍경은 같아도 감상이 계속 달라지니까 사진도 달라진다.

파도는 부서질 때 제일 예뻐. 라는 생각을 하면서 찍었으니까 사진에서 느껴졌으면 합니다.

위에 사진은 좀 구상하고 찍었다. 여전히 주제를 '시작'으로 잘못 안 채로. 생각한 것에 딱 맞는 사진은 끝내 못 찍었지만, 비슷하게 나와서 기분 좋다.

 

비하인드는 아래 사진. 저 친구가 갑자기 앵글에 들어와서 깜짝 놀람.

머고

원래는 사진전 다 끝나고 한 번에 올리려고 했는데, 사진 자랑하고 싶어서 사진전에 낼 사진만 빼두고 올려버림. 아직 확실힌 못 정해서 이 중에서 낼 수도 있지만. 무슨 사진을 빼뒀냐구요? 사진전에서 확인바람.

 

 

 

장난으로 제목 "사진전 사진 찍으러 새벽 다섯시에 운전해서 슬도 갔다온 썰 푼다"로 해놨던거 마지막에 발견했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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